EP.443
강윤호를 유혹하거라·
만금전주는 외손녀가 할아버지께서 잘못 말씀하신 게 아닐까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며 강윤호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내 손녀딸과 동침은 하였느냐?”
당신의 유일한 후계자가 되면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봐달라·
당돌한 제안에 승낙하고 잠시 차를 마시는 시간· 만금전주는 방심하고 있던 강윤호를 향해 지나가듯 물었다·
“네? 어르신?”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군· 만금전주는 순간 귀를 의심하는 강윤호의 반응에서 단번에 답을 도출해내었다·
“내 외손녀와 같이 산 지 몇 달째인데 그동안 아무런 음심이 솟지 않았단 말인가?”
“어르신· 어찌 남녀가 결혼도 하지 않고 그러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금전주는 강윤호의 아무런 거리낄 것이 없는 당당한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
‘시비들의 말이 맞았단 말인가·’
호북성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매일 옆방에서 자는데 그동안 아무런 음심을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물론 남녀 간의 관계는 당연히 결혼하고 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 하지만 맞선 상대가 아닌가· 남녀가 서로를 좋아하면 젊은 혈기에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다·
저택의 시비들에게 큰 관계 진전은 없어 보인다고 들었지만 혹시 다른 눈을 피해 밤에 이루어진 게 아닐까 했건만· 아무래도 시비들의 말이 맞은 모양이었다·
“여자 대여섯 정도는 우습게 마음을 훔칠 것 같이 생긴 놈이· 평생 여자와 연 한번 없는 숫총각처럼 구는구나·”
강윤호는 묘하게 정확한 숫자에 쓴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만금전주의 눈에는 건실한 청년의 쑥스러운 웃음처럼 보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질 미녀가 둘이나 있었지 않았는가· 거기에 둘 다 강윤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젊은 혈기에 선을 넘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는 상황에서 왜 넘지 않았는가·
‘당화린 그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정성인가 보군·’
분명 약혼녀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상은 하오문의 문제 여인끼리의 상호 견제와 동맹 등·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만금전주가 알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네가 강윤호 그 아이를 유혹해야 한다·”
만금전주는 외손녀에게 다시 확인시켜주듯 말했다·
——
“강윤호· 그 아이에게 네가 첫 번째가 될 수 있도록 해보거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라는 뜻은 아니다· 만금전주는 혹시나 하는 오해를 정정해주기 위해 말했다·
“제가 강 공자님의 첫 번째요?”
“너도 알다시피 그 아이에게는 원래 약혼자가 있다· 내 죽마고우의 외손녀이지· 지금은 병환으로 인해 사천당가에 있다더구나·”
“강 공자님에게 들었어요·”
그 사실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제갈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함께 사라질 뻔한 백가서점을 지켜내고 지금의 다서각으로 만들어내었지· 가장 힘들 때 함께한 두 사람이니 분명 그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힘들 것이다·”
“네에에· 그 그렇겠죠오오·”
제갈향의 어깨가 축 내려앉았다·
“기죽지 말거라!”
만금전주는 의기소침해하는 외손녀를 향해 호통을 쳤다·
“네? 네네네!”
“넌 내 외손녀이고 제갈세가의 막내딸이다! 자신감을 가지거라·”
“하지만 할아버지····”
“완벽한 첫 번째가 되란 말은 아니다·”
만금전주는 굳은 표정을 풀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에?”
“강윤호· 그 아이가 너와 성혼을 결심할 수준이면 된다· 직접 두 발로 제갈세가에 가서 당당히 너를 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만금전주도 외손녀가 강윤호의 마음속 완전한 첫 번째가 되는 것까진 바라지 않았다· 단지 흔쾌히 결혼을 결심할 수준이면 족했다·
“가 강 공자님이라도 그건 좀 힘드실 것 같은데요오·”
가문의 어른들도 있고요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걸요· 절대 쉽지 않을 거예요· 제갈향은 강윤호와 제갈세가로 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말했다·
“너와 성혼을 결심하면 그리하지 않겠느냐· 첫 결혼이면 된다· 다 큰 성인이 어찌 10년을 막연히 기다리겠느냐· 약혼녀의 빈자리를 네가 채워주거라· 강윤호 그 아이가 너와 결혼하고 10년 뒤에 둘째 부인을 들이면 언니 동생처럼 지내거라· 그러면 되지 않느냐·”
먼저 간 친우의 사윗감을 탐내는 일이다· 무슨 핑계를 대든 친우의 외손녀를 위해 무슨 배려를 하든 자신의 욕심이자 잘못이었다·
만금전주의 눈가에 뿌리치기 어려운 죄책감이 걸렸다·
“10년····”
“어렵지만 해야 할 일이다· 할 수 있겠느냐·”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내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두 사람이다· 만금전주는 외손녀를 위해 상황을 마련해줄 수 있을지언정 사랑까지 해결해줄 순 없었다·
외손녀가 해주어야 한다· 장 노야는 외손녀가 강윤호의 철벽같은 마음을 녹여주길 바랐다·
“····”
제갈향도 쉬이 답하지 못했다·
“할 수 있겠느냐·”
“네에에·”
제갈향은 외할아버지의 강권에 간신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어 어떡하죠·”
강 공자님을 유혹하라니· 제갈향은 강 공자도 하연 언니도 없는 저택으로 돌아와 침대에 뒹굴었다·
“약혼녀를 어떻게 이기냐고요오오오·”
하연 언니랑 동맹일 땐 둘이니까 막연하게 이길 수 있겠지· 희망이 보였는데요· 혼자 남으니까· 너무 답이 없어 보이잖아요· 제갈향은 침대에 얼굴을 묻으며 괴로워했다·
“강 공자님을 유혹하라고요?”
제갈향은 강윤호에게 들었던 일을 떠올렸다· 약혼녀는 당찬 언니라고· 심지어 예쁘고 가슴은 하연 언니보다 크다고 했다·
그녀는 가슴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자신도 하연 언니와 서 있으면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하연 언니의 키가 훨씬 크니까 보이는 착각일 뿐· 실상은 하연 언니가 조금 더 컸다· 그런데 그 하연 언니보다 더 크다니·
외모로 앞서가지도 못한다는 뜻이 아닌가·
一 넌 내 외손녀고 제갈세가의 막내딸이다! 자신감을 가지거라·
좌절하려는 제갈향의 머릿속에 외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에요· 그동안 허송세월은 한 건 아니라고요·
“저도 요새 강 공자님이랑 무척 가까워졌다고요· 이를 테면 최근에····”
一 독점 최고! 강 공자님 최고! 독점 좋아! 하연 언니 고마워요!
“이거 말고요!”
기억하면 일단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르는 버릇은 좀처럼 없어지질 않는다· 제갈향은 부끄러움에 서둘러 기억을 떠올리다가 강윤호와의 첫 기억까지 떠올려 버렸다·
一 웬 상자가···?
一 비켜주시면 안 될까요?
“시작부터 완전히···· 망했었잖아요!”
첫 만남부터가 상자였다니· 돌이켜보니 그동안 자신은 유혹의 유자도 없다·
자신에게 여성적인 매력이 있었나요· 사실 전부 낙제점이 아닐까요· 제갈향은 좌절감에 침대에 머리를 비볐다·
“강 공자님이 반할만한 여자를 생각해보는 거예요·”
제갈향은 좌절감을 애써 털어내고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별 괴상한 표정을 지어서 문제지 무표정을 유지하면 분명히 청초한 미소녀의 외모다·
어머니도 우리 딸· 딸 중에서도 제일 예쁜 데라고 하였다· 물론 그 뒤에 예쁜 거 말곤···· 이라고 하시며 걱정하셨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유혹의 유자도 없는 생활이었지만 강 공자님이랑 대화도 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장족의 발전이라고요· 이대로 결혼 상대까지 가보는 거예요·
강 공자님의 첫 번째 결혼 상대가 되어야 한다· 유혹하려면 자고로 색기가 넘쳐야 하지 않는가·
“유후! 나는 색기 넘치는 여자!”
제갈향은 부채를 펼치며 색기 넘치는 여자가 되어 보기로 하였다·
“우흫! 거기 강 공자님! 오늘 저녁 시간 어때요? 우리 일 끝나고 저녁 술 한잔?”
제갈향은 거울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우흫흫! 어머! 갑자기 허리끈이 풀렸····”
제갈향은 허리끈을 풀려다가 거울 안에 비치는 자기모습에 그대로 주저앉아 고개를 떨구었다·
“이건 그냥 천박한 여자잖아요오오오·”
바로 좌절했다·
애초에 색기 넘치는 여자라는 말이 너무 광범위하다· 당가풍운으로 치면 사천제일미와 호북제일기녀 사이만큼 거리가 크다· 구체적인 본보기가 될만한 사람을 정해야 한다·
제갈향은 고민 끝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하연 언니···!’
본보기가 될 것 같다· 많이 관찰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하연 언니는 강 공자님의 마음을 얻어내기까지 했다·
제갈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몰입을 시작했다·
“나는 하연 언니다! 우흫· 나는 하연 언니가 된다· 강 공자님을 좋아하는 게 다 보이면서 아닌척한다! 후후!”
성공적인 본보기였을까· 제갈향의 눈빛이 어딘가 임하연과 비슷해졌다·
“흐응· 당신 언제까지 내 손을 기다리게 할 거예요·”
제갈향은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연스럽게 남자에게 손을 잡게 하는 방법인데요· 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흐응· 당신· 오늘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들어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제갈향은 유혹이라는 말에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제갈 소저와 동맹을 맺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녀는 어색하게 남자 목소리까지 내며 1인 2역에 몰두했다·
“흐응· 알게 뭐에요· 부뚜막에 먼저 오르는 게 임자지·”
바로 유혹 성공· 완벽했습니다!
“와 완벽한 거 같아요! 저 사실 재능이 있었···· 엏?!”
거울 안· 정확히는 거울 안에 비치는 열린 문틈 너머· 제갈향은 방금까지 연기했던 사람의 눈을 마주했다·
“하하하· 제갈 소저·”
“어어어언제····”
제갈향이 고개를 돌리자 어색하게 웃고 있는 강윤호가 보였다·
“오늘 있었던 일이랑 며칠 뒤에 이모님들 앞에 소개될 일 때문에 왔는데···· 조 조금 뒤에 오겠습니다·”
“가 강 공자니이이임! 그 그게 아니라요!”
강윤호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그대로 사라졌다·
제갈향은 강윤호의 배려심에 눈물 나게 고마웠지만 사실 그냥 지금 상황이 눈물 날 것 같았다·
——
“제갈 소저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네에에·”
며칠 뒤· 만금전주의 딸들이자 제갈향의 이모들 앞에서 강윤호를 소개하는 자리· 제갈향은 강윤호와 함께 시간에 맞춰 만금전주의 저택으로 갔다·
‘결국 아무런 진척 없이 여기까지 왔어요·’
제갈향은 며칠째 부끄러워서 강윤호와 제대로 대화도 못 했다· 그나마 강윤호가 앞서 걸을 때 그의 소매 끝을 잡은 것은 최대한의 용기이자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이게 누구야? 향이 아니니· 여긴 무슨 일이야?”
“아 안녕하세요·”
제갈향이 모임 장소로 들어오자 어리둥절해하는 이모들이 그녀를 반겼다· 그녀는 이모들이 다가오자 부담감에 자연스레 가장 안심이 되는 장소를 찾았다·
“고향에 돌아간 거 아니었어? 오래 있네· 응? 넌 뭐야?”
이모들은 제갈향이 남자의 허리춤 뒤로 숨자 등장부터 무시하고 있던 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갈 소저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강윤호라고 합니다·”
후계자 이야기는 아직 나타나지 않으신 만큼 전주님이 해주셔야 하는 일이다· 강윤호는 사람 좋은 얼굴로 인사만 할 뿐이었다·
“뭐?”
“향이야· 이게 무슨 소리니? 너 검은 머리랑 사귀니?”
“아 저 그게····”
제갈향은 사람들에게 몰리는 상황에 약하다· 제갈향은 해명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압박감 느껴 쉽사리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잠깐만· 아버지가 설마 오늘 우리를 부른 이유가?”
제갈향의 이모 중 하나가 눈을 크게 뜨며 강윤호를 바라보았다·
“왜?”
“우리 중에 유일하게 영영이 자식만 후계자 후보가 없었잖아!”
그녀들은 이 자리에 유일하게 없는 제갈향의 어머니 이름을 말했다·
“뭐?! 그럼 이 검은 머리가?!”
“저희는 만금전주님의 초대로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만 앉아봐도 되겠습니까·”
강윤호는 제갈향을 보호하며 자신이 막말을 들을 사람은 아님을 은연중에 언급했다·
“아버지가 노망이 드셨나?! 지금 오랑캐를 어느 자리라고 불러와!”
하지만 그녀들의 분노는 이제 시작될 뿐이었다·
“그러니까 진즉에 아버지는 뒷방으로 물리고 우리끼리 하자고 했잖아!”
“영영이 그것도 제정신인가? 오랑캐를 딸아이에게 붙여줘?”
“이모님들· 고정하시지요·”
갑작스러운 적의에 제갈향이 떨고 있다· 강윤호는 에워싼 사람들의 적의를 부드럽게 받아넘기며 말했다·
“천한 오랑캐가 어딜 끼어들어!”
“음험한 오랑캐 새끼들이 무한을 활보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한다니까!”
“세상에! 지금 만금전장을 오랑캐 새끼에게 넘기자는 거야?!”
자리에 모여있는 여인들은 전부 지체 높은 집안의 부인들· 반면 눈앞의 상대는 사회의 최하층에서 빌어먹고 사는 검은 머리 오랑캐·
그 검은 머리 오랑캐가 감히 우리의 재산을 노리고 있다· 만금전주의 딸들은 쉽사리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강윤호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한 듯 쓴웃음을 지으며 관망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한 여인이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강 공자님이····’
멸시받고 있다· 제갈향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머리가 뜨겁다·
강 공자님이 왜 멸시를 받아야하는가· 갑자기 생각이 사라진다· 머리가 너무 뜨겁다·
“제갈 소저?”
제갈향은 자신도 모르게 강윤호의 앞에 섰다·
이런 기분을 어디서 느꼈던가· 그래· 하연 언니랑 당가풍운 정실 싸움할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아니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정수리부터 화가 난다·
방금까지 가슴 속에 있던 부끄러움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머리에는 하얀 분노와 가슴 속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용기가 솟구치고 있다·
“저기요!!!”
제갈향은 자신도 모르게 내공을 담아 강 공자에게 모욕을 주고 있는 여인들에게 외쳤다·
“햐 향이야?”
이모들의 시선이 제갈향에게 향한다· 엏· 모처럼 솟구친 감정이 순식간에 도망가려고 했지만 제갈향은 양 주먹을 움켜쥐고는 용기 있게 입을 열었다·
“강 공자님은 제 맞선 상대예요· 그 그러니까! 이모들이 함부로 막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추천과 댓글은 언제나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묵자’님 후원 감사합니다!
‘안드로몬’님 후원 감사합니다! 청운은 푸른 머리색에 보라색 눈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