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74
화월루가 왜 무한에서 손꼽히는 기루 중의 하나인가· 나는 화월루에 들어선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돼서 깨달을 수 있었다·
“무영신투가 훔쳐 간 귀물들만 생각하면 이가 갈리네· 오늘 강 포쾌의 노고를 내가 치하해줘야겠군·”
지주대인이 명 포쾌를 치하한다는 의미로 공연을 위해 청기들을 연이어 불러댔으니까·
분명 한 젓가락에 내 하루 식비 정돈하지 않을까 하는 음식들과 음주를 즐기지 않는 자들도 맛있다고 할만한 술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녀들의 춤과 음악은 나와 지주대인 단둘만을 위한 공연이라기엔 너무나도 성대했다·
“후훗· 명 포쾌님의 활약이 그뿐인가요·”
화월루에서 기녀들 단체로 동원해서 이 정도로 놀려면 도대체 얼마를 써야 하는 거지· 아니 지주대인이 평소에 얼마를 해 처먹어야 하는 거지·
길산이는 알려나· 순수한 궁금증에 고민하고 있을 때· 매향이가 내 빈 잔에 술을 따르며 지주대인에게 말했다·
“또 있느냐?”
“자칫 영원히 잡을 수 없었던 수많은 살인 사건의 범인들을 잡아들이셨지요· 최근에는 기루를 습격해서 애꿎은 기녀들을 살해한 무리까지 엄벌하셨답니다·”
“허허· 그런 일은 처음 듣는구나· 사실인가?”
“가짜 무영신투 사건도 그놈이 일으킨 일이었지요· 진범이 웃으며 유유히 배를 타고 도망가려는데 가슴에 천불이 일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건물에서 장강으로 뛰어든 이유가 그 때문이었군!”
“죽은 기녀들의 원한과 슬픔이 제 귀까지 들리더군요· 도저히 그놈이 가짜 무영신투라는 걸 알아도 배를 타고 도망가게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가죽점퍼에 칼이 날아와도 범인을 덮치는 열혈 형사라도 되는 것마냥 주먹을 쥔 손을 떨며 말했다·
“강 포쾌님····”
나는 매향이의 감격한 시선에도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속지 말자· 화월루는 술과 미소를 파는 곳·
남자의 대단치 않은 자랑에도 기녀는 세상에서 제일 잘난 남자를 보는 듯 영업용 미소를 지어주어야 하는 곳이다·
그녀의 감격한 표정이 사실일지 내 방심을 유도하려는 속셈일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허허· 매향이가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구나·”
역시 그럴 줄 알았지· 딱 봐도 협동 공격이네· 지주대인에게 대체 얼마를 받은 거야·
“요새 기녀들 사이에 최고의 화제가 강 포쾌님이랍니다· 강 포쾌님을 한 번만이라도 모셔볼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서로 난리지요·”
“허어· 정말이더냐?”
매향이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오늘 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대인께서도 모르실 거예요·”
설마 내가 기녀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건 포쾌 강윤호· 이런 식으로 알려진 건가·
하오문의 내전을 무마하기 위한 여론 조작 덕에 예상외의 곳에서 내 명성이 올라가고 있었나 보네·
내가 생각에 잠겨있자 조심스레 다가온 매향이의 손바닥이 내 팔뚝 안쪽에 닿았다
어딜· 가볍게 쳐냈다· 놀라서 낙담한 척하지 마세요· 연기인 거 티 납니다· 그녀가 내게 호감이 있건 지주대인과 짜고 치는 연기이건 상관없다·
기다리는 여인들이 있으니까· 안 된다·
“이거 인제 보니 매향이가 나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구나·”
“그래서 이렇게 대인님의 명령대로 성심성의껏 강 포쾌님을 모시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느새!
매향이는 기운차게 대답하더니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와 팔짱을 꼈다· 역시 접대에 이골이 난 기녀· 이 정도는 걸림돌도 되지 않는다는 건가·
팔뚝에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기분 좋은 감촉이 느껴진다·
침착하자· 이런 걸로 마음이 흔들려선 안 된다· 내가 무덤덤하게 있어서였을까· 팔뚝으로 느껴지는 살결의 감촉이 더욱 강해졌다·
넘어가지 마· 기문향주님이나 하연 소저가 알면 난 끝장이야·
누군가에겐 기루는 남자의 즐거움을 즐기는 곳이겠지만 난 라이브로 내 추태가 전부 보고되는 곳이라고·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이거 참· 화월루의 매향이가 저리도 붙어있는 걸 보면 수많은 남자가 까무러치겠군· 강 포쾌· 어쩌면 무한에선 나보다 강 포쾌가 더 유명할지 모르겠어·”
“수십 년간 조정과 중원을 단단히 지켜온 시금석과 같은 지주대인님의 명성과 어찌 저의 허명을 비교하십니까· 소인· 강윤호· 태산 앞에 나부끼는 깃털이 된 기분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
자연스럽게 붙어있던 팔을 쳐내고 지주대인을 향해 반쯤 절하듯 고개를 숙였다·
“태산이 이제 그럼 깃털을 품어주어야겠군·”
“네···?”
지주대인은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매향이에게 주문했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물러가고 매향아· 노래 한 곡조 불러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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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노래 한 곡조 올리겠습니다·”
아이돌 공연의 VIP석에 앉아있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하연 소저가 데뷔만 하면 단숨에 역대급 비주얼 원탑 아이돌급 느낌이라면 매향이는 외모로는 몇 수 아래더라도 다년간의 관록을 뽐내는 아이돌 가수 같았다·
물론 내 취향은 가창력보단 비주얼이지만·
“내가 명포쾌에게 작은 사건 해결을 부탁하고 싶네·”
드디어 때가 되었나·
지주대인은 매향이의 노래를 배경음 삼아 나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노래를 부르라는 게 대화가 밖으로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나 보다· 나는 지주대인에게 다가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외람되오나 혹시 제가 맡은 사건에 관련된 이야기이십니까?”
“그래· 더 이상 저잣거리가 소란스럽지 않았으면 좋겠군·”
간결한 명령· 방금까지 나를 칭찬하던 목소리가 아닌 일개 포쾌 따위가 거부할 수 없는 권력이 담긴 목소리였다·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물론 나에겐 통하지 않지만·
“강 포쾌님!”
“누가 노래를 그만두라고 했지·”
분노 어린 시선이 매향이를 향했다·
“죄 죄송합니다·”
매향이가 다시 노래를 시작하자 지주대인은 혀를 끌끌 차더니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천하의 명 포쾌가 여기까지 와서 이리도 어리석은 행동을 할 줄이야·”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당사자들의 입장을 경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 알고 왔으면서 왜 거절하냐· 나는 지주대인의 질문 섞인 시선에 완고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경청이라· 경청해서 무엇을 하고 싶었는가·”
“공정하게 처리해야지요· 그것이 포쾌의 본분 아니겠습니까·”
원리 원칙대로 행동하는 포쾌처럼 대답한다·
부패한 관리와 청렴한 포쾌· 원래라면 포쾌가 내밀어지는 봉투를 지주대인의 면전에 던지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겠지만·
“감찰어사의 강요에 어쩔 수 없는 건 아니고?”
“그 그걸 어떻게?!”
지금은 내가 미리 던져놓은 떡밥을 회수할 차례였다·
“정문원이가 요새 일찍 퇴근한다는 소문을 들었지· 분명 오늘도 둘이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을 테지?”
아니요· 집에 임신한 둘째 마누라가 있어서 칼퇴근하시는 겁니다·
역시 며칠 되지도 않은 일이고 정식 혼례도 치르지 않아 아는 사람이 몇 명 없나·
“오해십니다·”
말은 부정하지만 온몸으로 당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자·
완고한 포쾌인 줄 알았더니 실은 협상의 여지가 있는 어수룩한 포쾌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귀가 밝은 척하더니 사실은 한쪽 귀만 열려있었군 그래·”
지주대인은 다 알고 있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
사실을 들켜서 부끄러운 척을 해야 하는데· 표정 짓기가 까다롭네·
상상하자·
그래· 만우절 벌칙인지도 모르고 다른 반 여자에게 고백받고 덥석 손잡았다가 여자애 표정 썩어들어가는 순간을 떠올리는 거야·
부끄럽다· 너무 부끄럽다· 아니· 가슴이 아프다· 너무 심한 걸 떠올려버렸잖아· 머리에 피가 올라왔다·
“한쪽 귀가 아직 안 들리나 보군· 그래· 그럼 내가 강 포쾌의 한쪽 귀를 열어줘야겠어· 매향아·”
“네· 대인· 가져오겠습니다·”
매향이는 사전에 준비된 것이 있는지 방 한구석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가져왔다·
돈인가·
금을 가득 가져오면 그대로 돈 갚으시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건····?”
눈앞에 놓인 건 아쉽게도 금은보화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가 아니었다· 웬 기다란 원통이지· 안에 든 것도 없어 보이는데·
“내가 가만히 듣고 있으니 말이야· 자네의 명 포쾌라는 수식어 앞에 불명예스러운 다른 말도 하나 따라붙더군·”
검은 머리 오랑캐·
지주대인은 굳이 언급하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며 내 머리카락을 향해 눈짓했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머리 색을 단 한 번도 부끄러워해 본 적 없습니다·”
“훌륭한 아들이군· 하지만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말고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열어보게·”
도대체 안에 든 게 뭐길래·
감찰어사의 편인 나를 설득해야 하잖아· 전표라도 들어있나·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통 안의 내용물을 꺼내었다·
통 안에 들어있는 것은 커다란 종이 한 장·
그 안의 내용은 나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임명장···· 종9품· 포도군관(捕盜軍官)?!”
포쾌는 품계가 없는 직책이다·
조선시대 아전처럼 관직은 아니지만 관리를 보조하는 업무를 하는 자들·
공무원 사회로 치면 잘리지는 않는 대신 평생 승진이나 임금 상승도 없이 박봉으로 일하는 공무직과 같은 직책에 가까웠다·
반면 포도군관은 관직· 말단 관직이라도 무관 시험을 통해 임관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관직이다·
“어떤가?”
“지주대인님· 이게 도대체····”
왜 임명장인데 이름이 안 적혀있지· 포도군관이라는 직책 옆에는 쓰여져 있어야할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설마·
나를 설득할 패가·
지주대인은 내 의문을 확신으로 바꾸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작은 일을 처리해주기만 한다면 나도 작은 선물을 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추천과 댓글은 언제나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안드로몬’님 꾸준한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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